소록도의 나무

사람이 떠난 빈자리는 자연이 차지하기 마련이다. 서생리는 풀숲에서 발견되었다. 벽은 무너지고 지붕은 쏟아지고 뚫렸다. 비틀어진 창틀, 내려앉은 바닥마다 풀들은 번성한다. 등나무의 멈출 줄 모르는 기세는 기어코 집을 휘감아 무너뜨리는 중이다. 대나무는 잎이 말랐고, 껍질이 벗긴 채 타는 햇빛에 노출된 앙상한 가지는 이미 그 이름을 알 수 없다. 수많은 봄마다 진한 향기와 함께 아름다운 연보라 꽃을 피워냈을 이 덩굴은, 마을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마당 뒤편에 시원한 그늘시렁을 만들던 등나무가 마을을 통째로 집어 삼킬지 그들은 진작에 알지 못했다.


원래 이 산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았다. 따뜻한 남쪽 기후이므로, 겨울에는 푸른 잎을 떨구지 않는 사스레피나무와 같은 상록수들도 제법 숲 아래를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멀구슬나무(고롱굴나무)는 서생리에서 가장 키가 큰 나무다. 주변에서 흔하게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섬의 나무일 것이다. 거센 태풍에 가지가 한껏 뒤틀린 나이 먹은 소나무들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 섬을 차지한 이들이 그들의 정서로 숲을 관리한 탓인지, 섬 곳곳에 우리 숲에서는 저절로 자라나지 않는 플라타너스를 심었고, 산에는 삼나무와 편백 숲을 만들었다. 도로변과 마을 안쪽을 차지한 플라타너스들은 지금도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서생리에는 정원이 있었다. 마을 뒤편은 왕대숲이 바람을 막아 주었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당에 단풍나무며, 감나무, 라일락 나무를 심었다.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줄 팽나무를 심고, 벽에는 담쟁이를 올렸다. 정원은 태생적으로 위로의 공간이다. 숲과 구별되는 나무를 심어서 그 곳에서 즐거움을 얻었다. 신체가 구속된 공간, 나무와 꽃과 풀들은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벽돌을 혹은 빈병을 꽂아 작은 화단을 꾸몄으나 이제는 흔적만 남았다. 화단의 한해살이 꽃들은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 사람들이 떠나면 꽃들도 사라진다.


물길이 지나간 습한 자리에는 고사리가 많이 보인다. 이름도 어려운 주홍서나물은 서생리 집앞 마당을 독차지 하고 있다. 그늘진 숲 아래는 쐐기풀들의 세상이다. 베고 베어내도 끝없이 돋아난다. 사람의 발길이 며칠이라도 끊기면, 풀들은 곧바로 기세등등이다. 유난히 윤기 나는 잎을 가진 도깨비고비는 땅속에서 뻗어 나와 벌어진 벽돌틈새를 비집고 다닌다. 바람을 타고 날아든 예덕나무 씨앗이 자라 이제 스러지는 지붕을 위협한다. 건축이 소멸하는 자리에 자연이 번성하고 있다.


2017-11/ 건축의 소멸, 소록도 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