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경의선 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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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서 건너온 햄버거 쉑쉑(Shake Shack)버거가 강남에 매장을 열었다. 그러자 매장 앞에는 연일 이 뉴욕햄버거를 먹으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줄을 서서 몇 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햄버거 하나를 손에 쥘 수 있다고 하니 일찍이 보지 못했던 진풍경이다. 과연 그 특별한 맛 때문일까? 많은 이들은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 SNS가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인증샷과 업로드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SNS는 이제 가장 확실한 마켓팅 수단이 되었다. 인증샷과 해시태그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에 따라 업장의 매출 뿐 아니라 지역의 임대료까지 들썩인다.


80년대 초반은 방배동 카페골목이 젊은이들의 메카였다. 소위 강남으로 ‘물 좋은’ 장소들이 이동한 것이다. 90년대를 거치면서 압구정 로데오, 홍대앞이 뜨더니 십여 년 전부터 가로수길을 시작으로 삼청동, 서촌, 경리단길, 연남동 등이 연이어 ‘뜨는 동네’로 급부상 하였다. 그런데 이들 동네들의 특징은 몇몇 강남지역을 제외하고는 모두 골목길과 작은 도시조직들이 아직도 남아있는 오래된 동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필지가 작다는 것은 도로의 폭이 협소하다는 것과 연관이 있고, 그러니 자동차의 진출입이 불편하여 자연스럽게 보행자 위주의 공간이 형성되었으며, 개별 건물들의 층고도 낮아 전체적인 밀도도 높이 않다. 더욱이 오래된 동네다보니 낡은 건물들에 저렴하게 형성된 임대료가 젊은이들의 유입을 촉진시킨 것이다. 그러나 한번 뜬 동네는 그보다 더 솟아버린 임대료로 인해 심각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우리는 지금도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소비의 최첨단을 점유한 이들 동네들은 기실 오래된 도시조직이 가지는 공간적인 매력을 제외하고는 모두 상품의 이미지와 먹거리, 트렌디 하게 디자인된 매장의 이미지들이 SNS라는 강력한 매체를 타고 급속도로 증식되고 있다. 동네라는 공공(public)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상품의 소비라는 사적 활동을 극대화화는 것 이외에 공공적인 장치는 사실 전무하다. 보행자를 위한 쉼터는 고사하고 잠시 지친 다리를 쉬게 할 작은 벤치조차 없다.


저렴하게 길거리 커피를 뽑을만한 자판기도 찾아 볼 수 없고, 건물 턱에 앉아 테이크아웃으로 들고 나온 커피를 잠시 마시려 해도 매장 주인의 눈총이 거북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디 작은 녹지공간이라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상황. 마음씨 고운 주인장이 내다놓은 작은 화분에 그나마 위로를 받을까. 멋진 이름을 가진 가로수길도 예외는 아니다. 거리를 오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특정 매장의 위치는 잘 알지라도 그 ‘가로수’가 어떤 나무인지를 알고 있는 이는 드물다. 어쩌면 이 길에 심어진 은행나무들을 나무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보행을 가로막는 지장물이나 매장의 간판을 가리는 애물단지쯤으로 여기는 지도 모른다.


가로수길에서 가로수가 사라진다고 한들 치솟은 임대료가 내려가지도 않을뿐더러 건물주들은 오히려 영업환경이 한결 좋아졌다고 은근히 좋아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가로수길의 주인공은 가로수가 아닌 것이다. 어쩌면 주인공은커녕 조연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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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남자아이들에게 철길에서 노는 것만큼 즐거운 놀이는 없다. 필자는 지금은 숲길로 변신한 경의선 철도가 지나는 동네에서 나고 자랐다. 학교를 오가려면 반드시 철길을 건너야 했고 건널목의 차단기가 내려질 때 울리는 땡땡땡 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다. 철길을 따라 걷다가 기차오는 소리가 나면 긴 못이나 동전 같은 것들을 선로가 올려놓는다. 기차가 지나가면 못은 자석이 되고 동전은 길쭉하게 일그러지는데, 어린 마음에 이런 것들이 용기의 징표가 되어 너도 나도 하나쯤은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녔다.


철길을 따라 걷다보니 철길과 붙어있는 집들은 하나같이 가난하고 낡은 집들이었다. 집의 정면은 페인트칠도 하고 꽃도 심고해서 가난을 살짝 가릴 수 있었지만, 철길에서 보이는 집의 뒤통수는 늘 궁색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깨진 유리창이며 굵은 손가락이 들락거릴 만큼 틈이 벌어진 벽체며, 아무렇게나 팽개쳐진 살림살이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철길은 동네를 가른다. 아마도 도시의 변두리쯤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어진 철길은 세월이 지나면서 동네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다. 육중한 무게와 빠른 속도는 사람과 공존하지 못한다. 철로 변으로 담을 두르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야 기차도 안전하고 사람도 안전하다.


한밤중에도 운행을 멈추지 않는 화물열차의 소음과 분진은 철로 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그래서 부자들은 철길 옆에 살지 않는다. 건널목은 유일하게 객차안의 손님과 바깥의 주민들이 잠시 눈을 마주치는 곳이다. 사람의 길과 기차의 길이 교차하는 건널목은 의외로 많았고, 아이들은 늘 그 위험한 건널목을 떠나지 않았다. 밥 때를 잊고 노는 아이들은 찾으러 엄마들은 매일같이 건널목을 이리저리 건너 다녀야 했다.


기차는 높은 경사를 오르지 못한다. 그래서 다리를 놓고 굴을 지난다. 철로변의 시멘트 옹벽이 유난히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기차들이 전철화 되어 매연을 뿜지 않지만, 옛 경의선을 오가던 기차들은 연기를 뿜어냈다. 굴다리의 밑면과 옹벽이 시커먼 이유다. 신기한 것은 그 틈바구니에서도 풀이 돋고 나무들이 뿌리는 내린다. 가중나무의 대책 없이 긴 가지는 언제나 높은 옹벽에 붙어 있었다. 누가 심었는지 철로 변에는 노란색 루드베키아가 지천이다. 담벼락을 따라 심겨진 향나무는 유난히 검다. 당인리 발전소로 실어 나르던 석탄을 뒤집어 쓴 까닭일까.


어느 날 기차가 멈춰 섰다. 당인리발전소로 분기된 지선은 오래전 폐선이 되어 주차장으로 변했고, 그 주변에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더니 이제는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뜨는 동네’가 되었다. 그리고 2009년 경의선 본선이 지하화 되어 긴 역사를 사진 철길은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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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다섯 시의 해는 아직도 짱짱하다.


둥근 터널 같은 덮개 구조물은 이 지점이 철길의 지상부와 지하부의 경계임을 알려준다. 용산에서 출발한 기차는 여기서부터 지하구간 운행을 시작한다. 그러므로 이 공간은 경의선 숲길의 시작점인 셈이다. 아마도 이런 상징성 때문인지 앞으로 숲길에서 조우하게 될 많은 디자인 요소들이 첫 선을 보이는 모양새다. 남겨진 기차와 선로, 길게 뻗은 보행로와 줄지어 심어진 몇몇 종류의 나무들, 곧게 비워진 잔디밭, 편안히 앉을 수 있는 벤치, 이곳이 과거 철길이었음을 보여주는 건널목 풍경들.


숲길의 남쪽은 최근에 건축된 아파트단지다. 높은 건물의 아파트단지보다 한결 일조 조건이 좋아 보이는 숲길이지만 주민들의 왕래는 아직 뜸하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전시된 기차 주변을 맴돈다. 답사를 온 모양이다. 누군가가 나서서 설명을 한다. 다가가서 살며시 물으니 시내 모 대학의 건축과 학생들이란다. 은근히 조경학과 학생들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반만 맞힌 셈이다. 그들의 눈에 이 숲길 공원이 어떻게 느껴졌을지 궁금했지만 그사이 학생들은 빠르게 샛길을 따라 큰길로 나가 버렸다.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바라보니 오른쪽에 옛 용산구청 건물이 보인다. 벽면에 청년창업플러스센터라고 크게 써 놓은 것을 보니, 막연히 숲길과 어떤 연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변은 노후 한 주택지가 모여 있다. 본격적인 숲길이 시작되는 이곳에서 눈에 띄는 것 중에 하나는 숲길과 나란히 남겨진 낡고 오래된 다닥다닥 붙은 건물들이다.


옛 기찻길의 흔적이 오히려 철로를 등지고 남겨진 이 건물들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용도를 살펴보니 옛 용산구청 시절의 관성이 아직도 작동하는 듯, 법무사사무실, 행정사무실, 수많은 누군가의 작명을 했을 법한 철학관을 비롯하여 소규모 금형제작소, 주류도매창고 같은 업종들이다. 아마도 머지않아 재건축이 이루어지겠지만, 어떤 형태로든지 옛 철길 변의 추억이 한 자락이라도 남겨지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언덕을 살짝 넘으면 효창공원앞역에 이른다. 그런데 갑자기 숲이 사라졌다. 지나온 숲길이 200여 미터의 짧은 거리였는데도 순식간에 사라진 숲길이 못내 아쉽다. 정면으로 펼쳐진 언덕 위 고층 아파트들의 풍경도 어쩐지 부담스럽게 보이고, 광장과 연접한 개별 필지들에 둘러쳐진 메쉬펜스 또한 어떤 이기심과 지나친 노파심이 여전히 작동하는 듯해서 마음이 편치 않다. 광장을 좀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와서 다시 횡단보도를 건너니 다시 숲길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제법 높은 언덕을 넘어 공덕역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아마도 이 구간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공간이 아닌가 싶다. 가을 치고는 제법 따가운 햇살을 피해서 나온 이유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재개발한 고층 주거단지를 끼면서 지나기에 이 구간의 숲길 이용자는 제법 많다. 차림새로 보아 나들이 나온 사람들보다 아이들과 간단히 산책을 나온 가족들이 많아 보인다. 남쪽의 숲길 옆으로 도로가 나란히 지나기 때문에 숲길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도 여러 곳에 보인다.


사실 경의선 숲길 같은 좁고 긴 공간을 조경요소로 잘 디자인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적절한 길이와 굴곡을 가지는 동선의 선형에서 시작하여 각 동선 간의 위계를 부여하고 제원과 재료를 달리하여 차별성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난해한 작업이다. 재료는 경제적이어야 하고 시공성이 있어야 하며, 새로운 시도도 일부 선보여야 한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기능에 문제가 없다면 과감한 재료와 선형을 사용해 보고 싶은 설계자의 욕심도 어느 정도는 반영되어야 한다.


이 구간은 이러한 고민들의 흔적들이 많이 드러나는 곳이다. 언덕길을 오르면서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잔디사면은 흥미롭다. 녹색의 사면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날 뿐 아니라 빛을 받는 남사면이라 잔디도 건강해 보인다. 아마도 한겨울 눈이 내리면 일순간 아이들의 놀이공간으로 변신할 것이다. 뛰노는 아이들의 소음에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폭주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도시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멎은 지가 정말 오래되었음을 미안하게 기억해야 한다. 어쩌면 공원이 아이들을 구원해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으로.


두 도로를 이어주는 백범교가 숲길의 위를 지나는 언덕길의 정상부에는 조형성이 강한 작은 마당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원래 지형차가 제법 나는 공간인데다 아마도 아파트단지에서 쉽게 내려다보이는 공간이므로 설계자의 의지가 작동했으리라. 다양한 마감의 콘크리트, 산석, 목재, 내후성 강판, 금속펜스 등 우리가 요즘 조경설계에서 활용해 보고자 하는 모든 재료들이 동원되었다.


강한 직선과 날카로운 모서리가 드러나는 공간의 조형은 완만한 굴곡의 길을 한참이나 걸어 올라온 이용자에게 어떤 미적 쾌감을 느끼게 한다. 카메라의 렌즈가 자꾸 이쪽으로 향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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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덕역 주변 개발현장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빠져나와서 큰 길을 건너니, 어느덧 해가 반쯤은 넘어가 버렸다. 배도 슬슬 고파오는데 일명 ‘경의선 광장’에서는 푸드 트럭들이 한참 음식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길이가 100미터가 채 안되고 폭은 30미터 정도에 불과하니 면적으로 1천 평이 안 되는 작은 광장이다. 철길이 폐쇄되고 숲길 조성공사가 시작될 즈음부터 ‘늘장’이라는 장터마당이 생긴 것으로 기억한다.


어수룩한 가건물이지만 다양한 유기농 먹거리나 재활용품에서 시작하여 아이들을 위한 인형극단에, 유기농 텃밭에 이르기까지 소소함과 정겨움이 묻어나는 곳이다. 주말 저녁에는 이렇게 청년들의 푸드 트럭까지 가세하니 제법 동네잔치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얼핏 보니 광장 한 가운데 펼쳐 놓은 테이블들에 빈자리가 없다. 최근에 숲길의 북측으로 재개발 주거단지가 하나 둘 생기다 보니 이곳의 주민들이 단골이 된 듯하다. 이곳 경의선 광장을 제외하고는 숲길 영역 안에는 어떠한 상업시설도 없는 것으로 보아 숲길 내부에서의 상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숲길 북측의 주거단지 저층부에 다양한 상업시설들이 입점해 있기 때문에 녹지공간이 부족한 주거단지와 경의선 숲길이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갖는다. 긴 벤치에 앉아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년 부인들은 절친한 이웃인가 보다. 행색으로 보아 꽤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 구간은 유모차에 실려 온 아기들, 킥보드 타는 아이들, 이른 저녁을 마치고 산책을 즐기는 가족들, 데이트 나온 젊은 커플들이 뒤섞여 활기가 넘치는 공간이다.


주상복합 건물과 마주한 넒은 숲길 구간을 빠져나오면 곧 좁은 숲길에 다다른다. 이전 구간이 비교적 여유 있는 폭에 가운데가 개방된 잔디밭을 가진 구조라면, 지금부터는 숲길 좌우측에 녹지를 가지면서 중앙부는 자전거 도로와 보행자 도로가 나란히 이어지는 형태다. 원래부터 여기는 철길이 좁은 구간이었으리라. 숲길의 한편은 좁은 이면도로가 평행하게 따라가는데, 이 동네의 오래된 골목길이다.


숲길은 어느 지점에서도 이 이면도로로 빠져나갈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숲길과 오래된 마을길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건너편의 경우도 흥미롭다. 철길에 등을 기대고 있었던 오래된 집들 중 몇몇은 뒷벽을 털어 숲길과 마주하는 집으로 변신했다. 트렌디 한 카페가 하나둘씩 생겨나고, 오래된 동네 주점이 어수룩한 모습 그대로 숲길을 향해서도 간판을 내걸었다. 칠십이 훌쩍 넘어 보이는 두 노인이 간이 탁자에 앉아 막걸리를 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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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서강대역을 지나면 순간 길을 잃는다. 왕복 8차선의 대로가 숲길을 끊었다. 옛날에는 이곳에 굴다리가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넓은 길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제는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여기서 자세히 건너편을 살펴보니 언젠가는 도로를 지나는 보행교가 연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은 한참을 돌아 횡단보도를 또 건널 수밖에 없다.


밤이 많이 어두워졌다. 콘크리트 스탠드에 앉은 젊은 커플의 분위기이 왠지 어색하다. 나란히 앉았으나 어정쩡한 거리를 유지하고 별로 말도 없다. 아마도 연남동쯤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을까. 무슨 사연이라도 있을까. 가로등 아래 길게 늘어진 사람 그림자가 애틋하다.


홍대가 가까워 올수록 거리의 소음도 높아가는 듯하다. 멀리 장터의 불빛도 보이고 이제껏 보지 못했던, 잔디밭을 차지한 청춘들의 술자리도 등장한다. 불빛의 정체는 일명 ‘땡땡거리’에서 펼쳐진 작은 벼룩시장이다. 땡땡거리는 과거 철길 건널목 양쪽에 형성된 주점거리의 별칭이다. 돼지갈비로 유명한 이 거리는 홍대와 신촌로터리를 연결하는 빠른 지름길인데 기차 지나는 소리를 안주삼아 밤새 술을 푸는 그런 장소였다. 뿐만 아니라 인디밴드를 중심으로 한 홍대 클럽문화가 탄생한 것도 바로 이 거리였다.


철길은 비록 사라졌지만 주점들은 아직도 건재하다. 숲길을 따라 걷는 시민들에게 옛 장소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일행이 있었으면 분명 이 즈음에서 돼지갈비에 소주를 한잔 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오늘은 발걸음이 좀 바쁘다.


지하철 2호선의 순환노선이 완성된 것이 1984년이니까 벌써 30년이 훌쩍 지났다. 당시 홍대입구역은 2호선의 한 역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경의/중앙선과 공항철도까지 4개의 노선이 지나는 거대한 부도심이 되었다. 홍대입구 상권의 번성과 함께 외국인 전용의 게스트하우스까지 집중된 까닭에 이 지역은 지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경의선숲길 이전부터 핫 플레이스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홍대’는 이제 숲길과 더불어 ‘연트럴파크’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그 핵심에 지하철 3번 출구가 있다.


토요일 저녁 8시의 숲길은 그야말로 불야성이다. 돗자리를 펼치고 앉은 무리들에 의해 잔디는 보이지 않는다. 벤치 뿐 아니라 앉을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단차에 몸을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다. 숲길 양편의 주점에 자리가 없어서 밀려나온 것이 아니라, 잔디밭 그 자체가 하나의 명소가 된 느낌이다. 개인 간의 편안한 이격거리조차 확보되지 않는 이 잔디밭에 꾸역꾸역 모여드는 심리가 신기할 따름이다. 푸른 녹지에 대한 갈망이 이렇게 분출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그동안 이런 공간을 만드는 것에 너무 인색했던 것은 아닌지 여러 생각들이 교차한다. 아무튼 이 연트럴파크 덕분에 길가 편의점이나 마트들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경의선 숲길 대부분의 구간은 인접한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공간인 반면, 유독 이 홍대구간 만큼은 ‘뜨는 동네’ 연남동과 이어지면서 장소를 즐기러 찾아오는 손님들로 들썩인다. 숲길의 개통은 지역의 변신을 촉진시키고 있다. 동네 깊숙이까지 그 변화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찍이 이런 경우는 드물었다.


사람들의 숲을 지나서 계속 서쪽으로 이동하니 점차 진정되는 분위기가 회복된다. 다시 주민들이 모이고 강아지들과 산책을 즐긴다. 양측에 아파트를 비롯해서 저층 주거지들이 이어지면서 근린의 주민들이 다시 공간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동안 취객들의 소란이 있었는지 아파트 담장에는 이용자들의 주의를 촉구하는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아파트 쪽으로 긴 수로가 이어지고 있어서 숲길 이용자들의 동선을 어느 정도 통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을 보내야 하는 주민들에 대한 배려로 읽힌다. 가로등에 드러난 보행로는 처음의 그것과 동일하고 모든 디자인 요소들은 미세한 차이를 제외하면 대체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어서, ‘경의선 숲길’을 정의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마지막 구간에 드러나는 넓은 수반에 달빛이 담겨진다. 3번 출구의 소음이 여기서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그 대신 긴 지하구간의 운행을 마친 전동차들이 비로소 지상으로 빠져나와 가좌역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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쉑쉑(Shake Shack)버거의 원조는 뉴욕 맨해튼 중심부의 매디슨스퀘어공원(Madison Square Park)에서 시작되었다. 왜 여기에서 출발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공원에서 즐기는 한 끼의 점심은 정말 즐겁고 유쾌하다. 공원은 도시를 생기 넘치고 활기차게 만든다. 유니온스퀘어(Union Square)의 플리마켓이나 브라이언트공원(Bryant Park)의 경우를 보면 밀도가 높은 도심공간일수록 왜 공원이 반드시 필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공원은 태생적으로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눈치 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완전한 공공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이라도 담아낼 수 있는 빈 그릇이기 때문이다. 뜨는 동네라고 불리는 상업공간들은 겉으로는 문화지대를 표방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철저히 반 공공적으로 변한다. 상업적으로 잘 포장되고 멋진 상품들이 소비되고 있으나 진심이 지속되지 못한다. 치열하게 셈이 오가고 낙오자는 퇴출당한다. 거기에는 포용과 너그러움 같은 관용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즈음에 경의선숲길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이 길은 그냥 숲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절한 수목과 적절한 보행로가 이어진 그냥 그런 길이 아니다. 구간마다 사정은 다르나, 철길로 인해 잘려나간 삶의 공간을 연결하고 동네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과거의 시간과 만나는 길이다. 하나의 점으로 존재하는 끊어진 공간이 아니라, 길게 이어질 뿐 아니라 스치고 지나는 수많은 도시조직들을 연결하고 이어주는 멋진 도시 인프라(infra structure)로 확실히 작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길이다. 나무가 자라고 꽃이 피고 계절이 오가듯이 우리의 흘러가는 인생을 담아내는, 그래서 고마운 길이다.



2016-9/ 동심원작품집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