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무슨 아파트 동호수처럼 보이는 이번 칼럼의 제목은 국토교통부에서 고시하고 있는 ‘조경기준’의 고시번호다. 그러니까 풀 네임은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5-787호’다. 설계실무를 경험한 이들은 대체로 이 고시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에 익숙하다. 고시번호는 개정이 있을 때 마다 늘 바뀌지만, 그 내용은 최근 별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총칙을 시작으로 ‘대지안의 식재기준’, ‘조경시설의 설치’로 이루어지는 3개의 장 아래, 총 20개 조항의 조경기준이 나열되고 있다. 제1조는 이 기준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건축법 제42조제2항의 규정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에 목적으로 둔다고 밝히고 있다.
설계작업(design work)은 대단히 창의적인 작업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합리적인 솔루션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설계의 결과물이 구현되는 대지는 우리의 ‘유한한’ 자원인 지구 지표면의 일부이기에, 비록 그 소유권이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일정 규모 이상의 대지는 공공의 자산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지 안에 만들어지는 조경행위 역시 공공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기준을 이 고시에서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이 기준이 과연 조경이 가지는 ‘공공성’과 ‘독창성’이라는 서로 다른 측면을 균형 있게 뒷받침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 고시의 핵심내용은 제2장 ‘대지안의 식재기준’에 정리되어 있다. 조경설계가 ‘식재’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나무를 심는 행위는 여전히 조경분야의 가장 중요한 작업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제4조에서 제8조에 이르는 조항들은 식재를 위한 면적과 심어지는 수목의 종류, 크기 및 유형, 그리고 수량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동안의 개정 작업을 거치면서 조경공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수목이 심어지는 면적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는 등 전체적으로 도시환경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될 내용들이 많이 추가되었으나, 어떤 조항들은 그 취지와는 다르게 설계자의 창의적인 작업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조경설계를 식재설계에 지나치게 집중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작업의 다양성을 저해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식재수량과 규격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제7조를 살펴보면 용도지역에 따라 교목 및 관목의 최소 식재 수량을 규정하고 있다. 통상적인 경우로 본다면 이 기준이 과다해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큰 나무와 작은 관목들의 수량까지 꼭 규정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규정만을 지키느라고 마음에도 없는 ‘조경’을 하는 건축주라면, 정말로 형편없는 싸구려 수목으로 대충 해치우고 준공검사 후에 아무렇게나 방치하거나, 다시 뽑아버리고 그 공간을 유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엉터리 행위를 조경설계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도 심히 불쾌하고, 이렇게라도 해야 업계의 밥그릇이 지켜진다고 큰소리치는 업자들의 뻔뻔함도 창피하다. 어차피 제대로 된 건축주, 양심 있는 설계자라면 이러한 규정이 없이도 얼마든지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8조에서는 식재수종에 관한 규정을 설명하면서, 상록수와 지역 특성 수종의 식재 비율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내포되고 있는 의미를 곰곰이 살펴보면, 낙엽수에 비해 상록수의 가치를 좀 더 의미 있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낙엽수의 잎이 진 계절에는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라도 있어야 도시경관이 향상된다는 인식이 드러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어떠한 공간에 특히 겨울철 가지가 아름다운 낙엽수만으로 이루어진 조경공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말이 안 되는 규정이다. 물론 예외 조항이 있기는 하나, 허가권자가 그 예외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어떠한 공간에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전적으로 설계자와 건축주의 권리다.
설사 생육환경에 맞지 않아 식재된 수목이 고사된다고 할지라도 이에 따른 손해는 당사자들 간의 송사로 해결할 일이지 선제적인 규정으로 설계를 발목 잡아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 규정 때문에 설계현장에서는 최소한의 상록수로 흉내만 내다가 준공 후에 바로 폐기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반드시 상록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떻게 보면 최악의 편견이다.
말도 안 되는 조항이 또 있다. 지역에 따른 특성수종을 10%이상 심도록 한 규정이다. 나는 여기에서 말하는 지역특성수종이 무엇인지 지금도 알지를 못한다. 어떤 관공서의 실무자는 그 의미를 광범위하게 해석하여 ‘그 지역에서 생육할 수 있는 수목’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정신 나간 설계자가 아니라면 경기북부에 제주도 수목을 심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마나한 규정이다. 또 다른 실무자는 좁게 해석하여 ‘그 도시의 시목(市木)이나 시화(市花)’라고 설명한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에 만들어지는 조경공간에는 반드시 은행나무를 심어야하고, 부산시에 만들어지는 조경공간에는 반드시 동백나무를 심어야한다. 더욱이 총량의 10%라는 비율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도 불분명한데, 이런 조항으로 심의를 하고 행정행위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과거에 억지로라도 규정을 만들어서 최소한 일정 수준의 도시경관을 만들고자 했던 의도는 이해할 수 있겠으나, 지금은 그 때가 아니고 누구도 그렇게 어설프게 일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수준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불필요한 규정을 없애고 내실 있는 발전을 도모할 때다.
2015-11/ 조경신문 칼럼
얼핏 보면 무슨 아파트 동호수처럼 보이는 이번 칼럼의 제목은 국토교통부에서 고시하고 있는 ‘조경기준’의 고시번호다. 그러니까 풀 네임은 ‘국토교통부 고시 제2015-787호’다. 설계실무를 경험한 이들은 대체로 이 고시에서 서술하고 있는 내용에 익숙하다. 고시번호는 개정이 있을 때 마다 늘 바뀌지만, 그 내용은 최근 별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다. 총칙을 시작으로 ‘대지안의 식재기준’, ‘조경시설의 설치’로 이루어지는 3개의 장 아래, 총 20개 조항의 조경기준이 나열되고 있다. 제1조는 이 기준의 목적을 설명하면서, 건축법 제42조제2항의 규정에서 위임된 사항과 그 시행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는 것에 목적으로 둔다고 밝히고 있다.
설계작업(design work)은 대단히 창의적인 작업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합리적인 솔루션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설계의 결과물이 구현되는 대지는 우리의 ‘유한한’ 자원인 지구 지표면의 일부이기에, 비록 그 소유권이 개인에게 귀속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일정 규모 이상의 대지는 공공의 자산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지 안에 만들어지는 조경행위 역시 공공적인 시각에서 바라봐야 하며, 그러기 위해 필요한 기준을 이 고시에서 구체적으로 나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이 기준이 과연 조경이 가지는 ‘공공성’과 ‘독창성’이라는 서로 다른 측면을 균형 있게 뒷받침하고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이 고시의 핵심내용은 제2장 ‘대지안의 식재기준’에 정리되어 있다. 조경설계가 ‘식재’만을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나무를 심는 행위는 여전히 조경분야의 가장 중요한 작업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한 이유 때문인지 제4조에서 제8조에 이르는 조항들은 식재를 위한 면적과 심어지는 수목의 종류, 크기 및 유형, 그리고 수량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동안의 개정 작업을 거치면서 조경공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수목이 심어지는 면적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는 등 전체적으로 도시환경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될 내용들이 많이 추가되었으나, 어떤 조항들은 그 취지와는 다르게 설계자의 창의적인 작업에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조경설계를 식재설계에 지나치게 집중하게 함으로써 오히려 작업의 다양성을 저해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식재수량과 규격에 관한 내용을 서술하고 있는 제7조를 살펴보면 용도지역에 따라 교목 및 관목의 최소 식재 수량을 규정하고 있다. 통상적인 경우로 본다면 이 기준이 과다해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큰 나무와 작은 관목들의 수량까지 꼭 규정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규정만을 지키느라고 마음에도 없는 ‘조경’을 하는 건축주라면, 정말로 형편없는 싸구려 수목으로 대충 해치우고 준공검사 후에 아무렇게나 방치하거나, 다시 뽑아버리고 그 공간을 유용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엉터리 행위를 조경설계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도 심히 불쾌하고, 이렇게라도 해야 업계의 밥그릇이 지켜진다고 큰소리치는 업자들의 뻔뻔함도 창피하다. 어차피 제대로 된 건축주, 양심 있는 설계자라면 이러한 규정이 없이도 얼마든지 좋은 공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제8조에서는 식재수종에 관한 규정을 설명하면서, 상록수와 지역 특성 수종의 식재 비율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내포되고 있는 의미를 곰곰이 살펴보면, 낙엽수에 비해 상록수의 가치를 좀 더 의미 있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낙엽수의 잎이 진 계절에는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라도 있어야 도시경관이 향상된다는 인식이 드러나고 있다. 이 규정대로라면 어떠한 공간에 특히 겨울철 가지가 아름다운 낙엽수만으로 이루어진 조경공간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말로 말이 안 되는 규정이다. 물론 예외 조항이 있기는 하나, 허가권자가 그 예외를 인정하기는 쉽지 않다. 어떠한 공간에 어떤 나무를 심을 것인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전적으로 설계자와 건축주의 권리다.
설사 생육환경에 맞지 않아 식재된 수목이 고사된다고 할지라도 이에 따른 손해는 당사자들 간의 송사로 해결할 일이지 선제적인 규정으로 설계를 발목 잡아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 규정 때문에 설계현장에서는 최소한의 상록수로 흉내만 내다가 준공 후에 바로 폐기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겨울철에는 반드시 상록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떻게 보면 최악의 편견이다.
말도 안 되는 조항이 또 있다. 지역에 따른 특성수종을 10%이상 심도록 한 규정이다. 나는 여기에서 말하는 지역특성수종이 무엇인지 지금도 알지를 못한다. 어떤 관공서의 실무자는 그 의미를 광범위하게 해석하여 ‘그 지역에서 생육할 수 있는 수목’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정신 나간 설계자가 아니라면 경기북부에 제주도 수목을 심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마나한 규정이다. 또 다른 실무자는 좁게 해석하여 ‘그 도시의 시목(市木)이나 시화(市花)’라고 설명한다. 더욱 기가 찰 노릇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에 만들어지는 조경공간에는 반드시 은행나무를 심어야하고, 부산시에 만들어지는 조경공간에는 반드시 동백나무를 심어야한다. 더욱이 총량의 10%라는 비율이 어떤 가치를 가지는지도 불분명한데, 이런 조항으로 심의를 하고 행정행위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과거에 억지로라도 규정을 만들어서 최소한 일정 수준의 도시경관을 만들고자 했던 의도는 이해할 수 있겠으나, 지금은 그 때가 아니고 누구도 그렇게 어설프게 일하지 않는다. 시민들의 수준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불필요한 규정을 없애고 내실 있는 발전을 도모할 때다.
2015-11/ 조경신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