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의 작업기록, 도큐멘테이션 2007_2017


2018.05.08-05.27

돈의문 박물관마을 i6 하루. 순 내 문화실험실 순

10년의 작업기록, 도큐멘테이션 2007_2017




A4 용지 한 장의 크기는 긴 쪽이 297밀리미터이고 짧은 쪽이 210밀리미터이므로 면적은 대략 0.06평방미터다. 한 장을 바닥에 놓는다면 양발 가지런히 모아야 간신히 올려놓을 수 있는 크기, 50장이 좀 넘는 양을 모아야만 한 평 남짓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가로와 세로로 칸을 만들어 작업자의 이름을 적고 날짜와 선분과 화살표들을 적절히 혼합하면 일주일의 스케줄이 만들어지고 시각화된다. 작업량이 많은 때는 지면을 채우는 잉크와 배열에도 긴장이 배어있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슬쩍 여유가 드러난다.


2007년 봄부터 매주 만들어낸 주간 스케줄 표가 어느새 570여 장이나 쌓이게 되었으니, 축적된 시간들을 공간으로 치환하면 10평 정도의 크기를 가지게 되었다. 작은 정원을 만들 수 있고, 욕심을 버린다면 방 한 칸의 집을 올릴 수도 있겠다. 감사할 일이다.


작업은 늘 조심스럽고 늘 흥미진진하다. 모든 작업은 땅 위에 구축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좌뇌와 우뇌, 양팔과 양손 그리고 두 다리의 끊임없는 구동을 요구한다. 긴장과 이완의 지속적인 반복, 불안과 안도의 이상한 동거, 진척과 되새김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역행은 설계작업자의 숙명이다. 여기에 더해 상습적 좌충우돌과 치명적 시행착오 또한 피해 갈수 없다. 찢어진 메모지에, 혹은 값비싼 몰스킨에, 옐로페이퍼의 구겨진 한 모서리에도 그 흔적은 남는다. 이제는 휴대장치가 만들어내는 고해상도 이미지까지 가세하므로 기록들은 차고 넘친다.


design studio loci는 조경건축(landscape architecture)을 기반으로 다양한 작업을 하는 디자인 사무실이다. 이 작업기록에는 작업 전 현장답사에서 시작하여, 아이디어를 추출하는 다이어그램, 작업초기의 핸드 드로잉, 디자인 발전 과정에서 생산되는 스터디 모형, 정교한 시공도면을 위한 CAD 드로잉, 작업 현장, 준공사진에 이르는 과정들을 담았다. 이에 더해 작업실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도 간간히 발견할 수 있다.


십년의 작업기록. 모든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었으나, 모든 기록들을 담을 수는 없었다. 500여장의 이미지를 따로 모아 책으로 묶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해체하여 전시벽면을 구성했다. 이미지들은 산개되어 있고 정리되지 않은 채 공간 위를 흐른다. 뒤섞인 그림들은 그 자체가 설계가의 숙명이다. 작업과 일상은 늘 뒤섞이기 마련이다. 정리라는 행위는 가끔 무의미한 과장과 무책임한 소거를 동반한다.


작업의 이면에는 수고한 이들의 노고가 숨어있다. 그들은 나의 가족이며, 나의 선생이며, 나의 동료들이다. 그들은 늘 걷고 있는 길 전후좌우에 함께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고마움을 전한다.


_박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