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봄이 왔다.

입춘이 꽤 지났지만, 몇 차례의 꽃샘추위 탓에 봄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제주를 비롯해서 남쪽 도시들의 꽃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운전을 하다 보면 가로변 버드나무에도 물이 한껏 올라있다. 조경공사 현장들도 기지개를 펴나보다. 이른 아침부터 나무를 싣고 달리는 트럭들을 쉽게 마주친다. 한 해의 공식적인 시작은 일월이지만, 봄이 되어야 모든 게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학생들도 봄날에 새 학기를 시작하고, 우리 명절 설날도 대략 이월에 있다 보니, 추운 정월을 보내고 따뜻한 춘삼월이 되어 나무들에서 신록의 기운이 살며시 감지되어야 한 해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작가이자 세계적인 식물학자 자크 브로스(Jacques Brosse, 1922~2008)가 쓴 책 『식물의 역사와 신화(원제 La Magie Des Plantes)』에 보면 식물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이 소개되어 있다.

경찰서에서 검류계를 이용하여 거짓말을 탐지해내는 전문가인 클리브 벡스터(Cleve Backster)는 어느 날 피의자의 심리상태를 측정하는 장치를 식물에 사용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방금 물을 준 화초에게서 감정적인 자극을 받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것과 유사한 파장이 발견되었다. 식물은 바로 앞에서 끓는 물에 살아있는 새우를 집어넣을 때나, 붉은 피가 보일 때 격렬한 파장을 보이며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동물처럼 감정을 드러낼 뿐 아니라 감정을 기억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는 또 다른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벡스터는 여섯 명의 학생들로 하여금 제비뽑기를 해서 그 중 한명에게만 다음과 같은 지시를 주었다. “두 개의 식물이 놓인 방으로 들어가서 그 중 하나의 식물을 뿌리 채 뽑고 발로 뭉개지도록 밟을 것”. 그러므로 그 식물이 훼손되는 것을 아는 것은 온전한 나머지 식물과 지시를 받은 학생뿐이다. 그리고 지시를 받은 학생을 포함해서 여섯 명을 다시 불러 모아 차례대로 온전히 살아남은 식물 앞을 지나가도록 한 후, 검류계를 이용하여 식물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그 식물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은 다섯 명의 학생들이 지나갈 때는 반응이 없다가, 식물을 훼손한 학생이 그 앞을 지나가자 비로소 격렬한 파장을 나타내며 범인을 지목하였다는 것이다.


1966년 당시 벡스터의 실험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또 논란에 휩싸였다. 실험의 오류를 지적하는 학자들도 많았고, 실험을 통해 그의 오류를 지적하고자 하는 학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몇몇 반대파들의 실험에서도 유사한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아직까지 그 이유를 지금의 과학적인 지식을 통해 명백히 밝혀낸 바는 없지만, 식물에게도 동물이 가지는 것과 유사한 종류의 감정이 있으며 그것은 소통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듯하다.


자신이 키우는 화초에게 좋은 말을 해 줄때와 나쁜 말을 했을 때, 식물에게서 나타나는 반응이 분명히 드러난다라든지, 수확을 앞둔 와이너리에 클래식 음악을 계속 들려주었더니 생산된 포도주의 품질이 크게 좋아졌다는 농장주의 경험담 역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것들이다. 가꾸는 자의 깊은 이해가 식물에게 전달되고, 식물이 자신이 느끼는 만족감과 일종의 ‘고마움’을 가꾸는 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한다는 점을 식물 애호가들은 내내 경험해 왔다.


우리의 전통 문화 뿐 아니라 멀리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문화에서도 발견되는 당산나무 풍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무는 이미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는 하나의 신앙으로, 또 사람과 소통하는 감정적인 대상으로 보고 있다.


독일 뮌헨에서 가까운 근교에 있는 다카우 수용소는 2차 대전 당시 독일 정치범과 유대인들을 수용하고 처형한 곳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당시의 수용시설인 막사건물들은 모두 철거되고 막사 터와 몇몇 전시공간만 남아 있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당시 막사 사이에 줄지어 심어져 있었던 포플러 나무들이다. 마침 그곳을 방문한 어떤 독일 교사의 설명을 듣자니,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저 나무들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며, 자기는 늘 여기에 와서 그 나무들과 대화하고 당시를 상상해 보곤 한다는 것이다.


십년 전쯤 지금 광주시의 옛 전남도청사 일대에 조성한 국립아시아 문화전당 프로젝트의 조경설계를 진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설계팀의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518 민주화운동 당시의 기억을 보존하고 드러내는 것이었는데, 그 구체적인 장치로 당시 도청사 앞마당에 있었던 은행나무를 현장에 존치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분명했다. 앞서 다카우 수용소의 경우처럼, 그날의 사건을 현장에서 지켜보았을 그 나무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나무를 목격자 나무(WITNESS TREE)라 불렀다.


새봄을 맞아 신록이 돋아나고 곧 꽃의 잔치가 만발할 것이다. 모두가 마치 식물 애호가인양 화원이며 꽃시장을 행사장처럼 휩쓸 것이다. 화려한 찬사가 뒤따르고, 모두의 스마트폰 앨범에는 족히 수십 장의 ‘꽃사진’이 저장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여전히 한쪽에서는 웅웅거리는 기계소리에 비례하여 산과 숲이 잘려나갈지 모른다. 앞의 책 『식물의 역사와 신화』를 다시 인용해 본다. 러시아출신 작가 블라디미르 솔로우힌(Vladimir Soloukhin, 1924~1997)의 저서 『풀』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는 땅 위로 솟아나 풀들을 먼지처럼 작은 조각이 나도록 짓밟아버리고, 불도저와 트랙터로 땅을 갈아서 그 위에 시멘트와 펄펄 끓는 아스팔트를 덮어버린다.


뿐만 아니라 몹쓸 기계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해 땅 속에 중유나 음식 찌꺼기, 선화 물질, 알칼리성 물질, 온갖 독성 물질을 쏟아 붓기도 한다. 우리에게 아직도 풀들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할 참인가? 나는 머지않아 우주적인 재앙을 만나거나 인간 자신의 무지가 빚어낸 재앙으로 황량한 사막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렇게 되기 전에, 꽃을 배경으로 화려한 봄맞이 셔터를 날리기 전에, 한 번 만이라도 마음을 담아 가슴으로 불러보아야 한다.


나무야, 나무야.


2015-3/ 한국조경신문 칼럼